"아카샤……왜……."

방금 '그녀'에게 들은 말을 남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신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힌 게 너무나도 미안해서, 사죄하고 어떻게든 모든 걸 되돌리고 싶어서, 온갖 죽음의 위기도 무릅쓰고 세계의 비밀을 캐내면서까지 이곳에 왔는데, 어떻게?!

"당신이 모든 우주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여신이라고……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날 기억하지 못할 수 있는 거지?"
――'여신'이라느니, '모든 우주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느니, 전부 당신 계(界) 인간들의 인식 범위 내의 이해에 불과하지.

남자의 외침을 조소하듯, '그녀'는 남자가 익히 알고 있는 사무치게 그립던 여성의 모습에서 남성으로, 전설 속의 동물로, 형체를 알 수 없는 빛의 덩어리로 모습을 바꾸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카식 레코드', 모든 계를 아우르는 기록의 집합체. 당신 계(界) 인간들이 나에게 붙인 명칭, 나에 대해 내린 정의지, 아마. 당신들은, 그 '아카식 레코드'라는 내가 그 말 그대로 모든 계에서 일어난 온갖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리라믿고 있는 모양인데…….

'그녀'의 어조에는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처럼 아득히 방대한 지식을, 지금 당신 눈앞에 보이는 '나' 하나가 전부 알고 있으리라 믿었다면, 오산이야.

그 말이 끝나면서 '그녀'의 형상은 한 그루 거대한 나무의 빛나는 실루엣으로 변하였다.

――'아카식 레코드'의 지식은, '세계'라는 무한한 연결고리 안 곳곳에 분산되어 있어. 당신이 태어나 자란 계는 물론, 당신이 모르는 계에서 숨쉬는, 그 모든 혼 하나하나에. 지금 여기에 서 있는 당신의 혼도, 그 지식의 극히 일부를 지니고 있지……다만 당신이 그것을 인식할 수 없을 뿐.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나무'에서 뻗어 나와 남자의 이마를 가리켰다.

――하지만, 혼들에게 분산된 지식에는 나도 접근할 수 없지.

빛의 나뭇가지는 도로 '그녀'에게로 돌아갔다.

――다만, '아카식 레코드'의 지식은 끊임없이 순환하기에……다른 혼들을 거쳐 언젠가는 반드시 나에게 돌아와. 한 번 나를 떠난 지식이 나에게 돌아오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당신들의 기준으로 환산하면 짧아야 오백 년. 내가 상시 보유하고 있는 지식은, '아카식 레코드'로서 존재하고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들과, 이 세계의 근원을 이루는 기록뿐.

'그녀'는 다시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당신을 기억해야 마땅한 내가 당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신과 '인간 여자' 형상의 나, 이 둘이 당신의 계에서 함께했을 적의 '아카식 레코드' 속 '기억'이 이 거대한 세계의 어딘가를 흐르고 있기 때문이겠지. 단지, 그뿐이야.

단지, 그뿐?

지금까지의 노고를 조롱당한 기분이 들어 남자는 그렇게 따지고 싶어졌다. 그러나 따질 수 없었다.

불현듯 이 공간이 한 번 일렁였다.

――당신이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녀'가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완전히 무감정한 듯하게도,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게도 보이는 눈빛이다.

――세계의 법칙을 왜곡해서까지 '나'에게 접근하기란, 인간 한 명의 힘으로는 벅찼겠지.

공간이 다시 한 번 흔들린다. 조금 전보다 불안정하게.

――마지막으로, '내가 지금 지닌 지식'에 근거해 판단한 것을, 간단히 말해 줄게.

'그녀'가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사랑의 힘'이, '남녀의 결합'이, 우주의 근본마저 바꾸거나 극복할 수 있다. 그런 자기 연민적인 자신감은, 버리는 게 좋아, 아르데(Arde)의 인간 남자.

'인간 남자'라는 말에는 이상하게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들어가 있었다.

공간 전체가 무너질 듯이 요동한다.

――이곳에 도달한 것도 당신의 힘으로 가능했던 일이니, 돌아가는 길도 부디 자력으로 끝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지.

그 말과 함께 '그녀'의 형상은 눈도 뜰 수 없을 만큼 눈부신 빛으로 변하여 남자 앞에서 사방으로 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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