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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날개자리의 흰날개성운 1

작은 낙원을 지키던 소년과 소년을 지키던 소녀의 이야기
검은날개자리의 흰날개성운



1. 하얀 날개의 눈물



영원한 풍요 안에서 평화와 번영을 잇는 ‘낙원’의 밤은 오늘도 그 안에 잠든 모두를 포근히 감쌌다. 모든 이가 잠들어 있어야 할 밤에, 잠들지 않고 ‘낙원’의 가장 큰 도시인 필란테의 외곽 언덕에 우뚝 서서, 밤하늘에 ‘별의 바다’라는 별칭을 수놓은 달과 별들과 함께 밤을 지키는 구조물이 있었다.

갖가지 풀이 표면에 깃들인 거대한 블록 형태의 단단한 흙이 완만한 고저차를 두고 기기묘묘하게 배치된 언덕 위에 세워진 그것은 전설 속의 신성한 나무처럼 아름답고 엄숙한 천문대였다. 그 천문대 뒤편, 저만치 아래에, 이 시각에 잠들어 있어야 할 두 작은 생명이 서로 간격을 두고 모습을 드러냈다.

“크리스타, 잠깐만……!”

흙 블록 위로 쑥 고개를 내민 흑장미색 머리 여자아이의 손을 별빛처럼 하얀 연보랏빛 머리카락의 남자아이가 꽉 붙잡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만 쉬었다 가자……!”

이제 마악 열 살이 된 여자아이는 머리를 도로 숙이고 동갑의 남자아이 쪽을 돌아보았다.

“에? 앞으로 금방인데. 두 블록만 더 가면 돼!”
“크리스타는 너무 빨라……난 벌써 다리 아프고, 숨이 찬다고…….”

거의 주저앉을 기색인 남자아이 앞에서 크리스타는 ‘아이레가 느린 거야’라며 튀어나오려는 핀잔을 삼켰다. 본래는 이런 길도 나지 않은 험준한 지형을 몸소 오르는 일 한 번 없이 안전히 지켜져야 할, 지금은 대신전(大神殿)의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안전히 잠자고 있어야 할 아이레를, 늦은 생일 선물로 모두가 잠든 도시의 야경을 보여 준다며 어른들 몰래 이끌고 나온 것은 자신이다.

자신이 지금 입은 수련복의 여벌을 입혀 여기까지 데려온 아이레는 매일같이 그 수련복을 입고 훈련을 받으며 생활하는 아이들을 보면서는 상상할 수도 없으리만치 지쳐 있었다.

“2분만이야.”

블록의 벽면이 이룬 그늘 밑에 둘은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둘이서 ‘별의 언덕’ 한 모퉁이에서 보내는 한밤중은 풀벌레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하고, 지금 눈앞에는 ‘별의 언덕’ 아래를 둘러싸고 저기쯤에 대신전을 품은 커다란 숲과 그 숲 너머 산만이 깜깜했다.

이렇게까지 고요한 밤도 둘에게는 처음이었다.

“아이레가 날 수 있다면 저기까지 편하게 금방 갈 것 같은데.”

적적함에 어쩐지 겁이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크리스타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텄다.

“날아도, 사람들 눈에 금방 띄겠지……크리스타는 무겁고.”
“뭐? 네가 힘이 약한 거겠지!”

상황을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면 어디 덧나나? 크리스타는 이번에는 퉁명스런 핀잔을 던졌다.

“그렇네.”

담담히 긍정하자 크리스타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호셰 선생님께 그랬어. 나도 힘이 세지고 싸움도 잘하게 훈련을 받고 싶다고. 근데 그건 ‘낙원에서 가장 고귀한 크샤앤나’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하던 공부에 집중하라셨어.”

잠시 말이 끊겼다.

“크리스타만큼 힘 세고 싸움 잘 하는 아이는 수련생들 중에 없다고, 유모도 그러더라. 크리스타가 날 수 있다면……날 번쩍 들고 저기까지 순식간에 날아가겠지.”

‘낙원에서 가장 고귀한 하얀 날개의 전령’으로 태어난 남자아이는 날개 없는 여자아이 옆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이레, 기운 내!”

망설이던 크리스타가 아이레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하늘을 날고 못 날고, 힘이 세고 약하고,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야! 넌……넌 여기 지상에서 평생을 바쳐 ‘낙원’을 지키는 고귀한 사람이잖아! 난 아무리 강해져도 흉내낼 수 없다고. 난…….”

‘하지만…….’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비관적인 반론은 크리스타의 눈빛 앞에서 사라졌다.

「난, 그래도 계속 강해질 거야. 낙원의 누구보다도 강해져서, 네가 마음 놓고 ‘낙원’을 지킬 수 있도록 평생 널 지켜 줄 거라고!」
「……크리스타…….」

어린 크리스타의 결의는 아이레의 마음에 직접 전해진 사념의 어조만큼, 아니, 그 어조만으로는 짐작도 안 될 만큼 굳셌다.

‘낙원에서 가장 고귀한 크샤앤나’를 곁에서 호위하는 유일의 수호자. 말이 트이고 생각이 생기기도 전에 크리스타에게 어른들이 부여한 사명이었다.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이 무엇이고, 어째서 그 역할이 자신에게 맡겨졌는지를 이해하기 전부터, 아이레의 존재는 크리스타에게 영문 모를 규율과 단조로움으로 가득한 대신전의 삶에서 단 하나뿐이라 해도 좋을, 반짝반짝 빛나는 기쁨이었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대체로 선하지만 장래의 전사나 성직자로서 대신전의 엄격한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자라도 거칠고 때로는 옹졸하며 이기적이기까지 한 동기들과 달리, 아이레는 웬만한 여자아이보다도 예쁘고, 상냥하고, 마음씨 곱고, 때로는 슬프면서도 결의에 찬 눈빛을 띠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레는 둘만이 주고받을 수 있는 사념의 대화에서 크리스타에게 마음을 기울여 주었다.

낙원을 수호하는 자로서 만인 앞에서 낙원의 주민들을 축복하고 북돋는 자리에서도,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도, 어린 나이부터 빛나는 안팎의 아름다움은 크리스타의 마음에도 스며 반짝였다.

아이레 님은 네가 전 생애를 바쳐 수호해야 하는 ‘낙원’의 수호자라는, 아이레와 자신이 열 살 생일을 맞이한 일주일 전에 받은 대신전 어른들의 엄숙한 당부는 의무라기보다 축복이었다.

그것이 이 마음에, 영혼에 얼마만큼의 축복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아이레도 알까? 그 자문(自問)에 답해 주듯 아이레는 별빛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 널 믿고 힘낼게. 저기 도시가 내다보이는 절벽까지 가는 동안에도……!」
“……앗, 그렇지! 서두르자!”

2분이 아니라 아무리 짧아도 2의 제곱분은 지나간 것 같다.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던 크리스타는 주춤했다. 철렁한 가슴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아이레가 불안에 찬 사념을 보냈다.

「크, 크리스타…….」
「드……들었어?」

‘낙원’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들은 적 없는 섬뜩한 절규. 그것이 둘의 속삭임만이 오가던, 풀벌레도 울지 않는 고요를 한 번 찢은 뒤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빨리 자리를 떠야 한다. 하지만 이대로 섣불리 움직였다 들킨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봉합된 고요 속에서 크리스타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조금 전까지 둘이 기대고 있던 벽면에 아이레가 떨리는 손을 가져다 댔다.

“아이레―!!”

무심결에 제지의 손길을 뻗어 아이레의 다른 한 손을 잡은 때,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실체를 감지할 수 없는 경악과 끔찍한 공포가 잡은 손을 통해 전해져 왔다. 경악과 공포를 어린 몸 하나로 감당하지 못하고 아이레는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왜……왜 그래? 아이레! 나한테도 보여 줘!」

다급히 외치자마자 아이레가 ‘목격한’ 장면이 혼절하듯 크리스타에게 덮쳐 왔다.

음산한 빛이 어둑히 밝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미지의 방. 검은 로브로 온몸을 감싸 중앙의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원을 이룬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낮고 규칙적인 웅얼거림. 선혈이 뚝뚝 떨어져 고이는 투명한 용기. 그리고…….

검은 로브에 대신전의 금색 휘장을 두른 자가 양손에 하나씩 들고 선, 작고 아름다운 하얀 날개. 아니, 본래는 하얬을 피투성이의 하얀 날개.

밑에는 그 날개의 주인이었을 누군가의 형체 잃은 육신.

……도망쳐야 해!

「아이레!!」

크리스타는 붙잡고 있는 손을 꽉 쥐고 사념을 쥐어짜 아이레에게 외쳤다.

「꽉 잡아!」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멀어지지 않으면 저들이 이번에는 아이레의 날개를 뽑아 아이레를 죽일지도 모른다. 그 직감 하나로 마음을 다잡고 크리스타는 아이레를 끌고 조금 전까지 왔던 길을 최대한 동선을 아껴 미끄러지다시피 내려갔다.

기기묘묘한 내리막길 위에서 서두른 탓에 옷이 군데군데 찢긴 것도, 대신전의 신관들임이 분명한 저들이 별의 언덕 어디쯤에서 누구를 무슨 이유로 죽였는지도 생각할 새 없이 숲으로 뛰어들어 대신전 방향이라고 생각되는 쪽으로 한참을 내달린 뒤의 일은 둘의 기억에서 또렷하지 않았다. 다만 크리스타는 기진맥진하고 아이레는 반쯤 넋이 나간 채 숲의 보초들에게 발견되어 대신전으로 보내졌고, 크리스타는 신전의 어른들에게 둘이서 숲을 몰래 구경하다 어둠이 무서워져 도망쳐 왔다고 둘러대고는 꽤 엄한 꾸지람을 듣고 일주일 간 근신에 처해졌으며, 아이레는 그날 이래로 이틀 동안은 앓아누웠다는 정도까지만 각자가 겪고 인식한 범주 내에서 기억할 수 있었다.

돌아온 뒤에 제각각 곤욕을 치른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별 큰일이 아니었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서, 아이레가 별의 언덕에서 대지와 의식을 공유하고 크리스타가 아이레의 사념을 받음으로써 무언가 알아서는 안 될 것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대신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은 데에 둘은 안심했다.

그러나 ‘낙원’과 한 발음의 이름을 공유하는 하얀 날개의 영문 모를 처참한 말로는 둘의 마음에 영영 지워지지 않을 핏자국으로 남았다.





우주 어딘가에 ‘낙원’이라 불리는 자그마한 별이 있었다.

크샨나. 지구라는 별보다도 자그마한 그 별의 이름은 주민들의 고대 공통언어로 ‘낙원’을 뜻하였다. 동시에 그것은 ‘하얀 날개’를 뜻하기도 하였다.

별을 ‘낙원’이라 부르는 500만 지성체들의 생존을 허락하는 안전하고 풍요로운 땅은 별 전체 면적의 0.1퍼센트에 불과했고, 지성체들은 그 좁디좁은 지상을 자신들의 낙원으로 삼아 커다란 도시 하나, 그보다 작은 도시 다섯, 수십의 크고 작은 마을을 이루고 수천 년의 영화를 꽃피웠다.

마음과 마음은 때때로 충돌해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위하며 한마음으로 협력해, 꾸준히 발전하는 인류 문명과 자연의 한 줌 축복 간의 조화를 유지하며 낙원의 행복을 풍요롭게 가꾸어 왔다.

그렇게 이 별 위에 평화롭게 살아 숨쉬는 지성체 중 1할은 크샤앤나, ‘하얀 날개의 전령’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종족이었다.

날개를 제외한 육신도 정신도 수명도 크샨나 지성체의 9할 가까이를 차지하는 날개 없는 자, 즉 인간과 다르지 않은 크샤앤나들이 등에 달고 태어난 한 쌍의 하얀 날개는 하늘을 날기에는 너무도 작았다. 대신에 그 미적인 조형물 같은 하얀 날개가 그들에게 부여한 것은 이 ‘낙원’의 천지(天地)와 소통하는 능력, 그리고 그 소통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인간은 지닐 수 없는 인간을 초월한 힘을 얻어 발휘하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수 년에 한 번, 한 명. 성인이 되는 열여덟 살을 넘긴 뒤 ‘낙원’의 특별한 부름을 받은 크샤앤나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얀 날개를 드넓게 펼쳐 승천한다고 하였다.

언제, 어떻게, 어떠한 모습으로 승천하는지, 승천하면 저 드높은 하늘의 어디로 가 어떻게 되는지, 별 위의 지성체 대부분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크샤앤나를 부르는 ‘낙원’이 과연 낙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별인지, 이 별 위의 지성체들이 이룬 낙원인지조차도.

그러나 크샤앤나의 승천이 수백, 수천 년 전부터 크샨나 위의 작디작은 낙원을 영원불멸의 낙원으로 유지시켜 온 불가사의한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만은 이 땅의 어린아이도 알았다.

승천의 진실은 대대로 낙원에서 가장 고귀한 크샤앤나의 계보 ‘이라’를 받드는 날개 없는 자들, 그리고 승천의 의식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담당하는 자들만이 알고 있었다. 그것도 각자에게 허락된 만큼만.

천명을 다하기 직전까지의 일생 동안 낙원의 원천을 지탱하는 능력을 지닌, 그래서 낙원에서 가장 고귀한 크샤앤나인 이라와, ‘이타라’, 즉 낙원의 한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어도 이라와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 ‘이라의 수호자’로 선택되는 날개 없는 자에게는 아무런 진실도 허락되지 않았다.

선혈로 얼룩진 하얀 날개를 크샤앤나의 힘으로, 혹은 그 힘을 빌어 목격한 어린 시절의 그날 이래로, 아이레와 크리스타는 허락되지 않은 진실의 극소한 편린을 오래도록 남몰래 곱씹으며 성장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같은 날에 탄생한 둘은 일주일 전, 같은 날에 열여섯 살의 생일을 맞이하였다.

“……다 왔어. 자!”

오늘도 어김없이 수억의 반짝이는 별이 ‘별의 바다’를 수놓은 밤. 별의 언덕 상층부 한 모퉁이의 작은 블럭 위에 올라서서 크리스타는 아이레의 손을 잡아끌었다. 잠깐 숨을 돌리고서 블럭의 끝에 선 둘의 눈앞에는 저 아래 민가에 잠들어 있는 시민들은 상상도 못 할 도시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펼쳐졌다.

‘바다’라는 것을 평생 보지 못함이 아쉽다는 불평도 거뜬히 지워 버릴 듯한 ‘별의 바다’. 그 아래에 자리한 도시 또한 보석 같은 수천의 작고 하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아마도 취침에 들어간 시민들을 깨우는 일은 없이.

“……고마워. 여기까지 와 주어서.”

6년 만에야 처음으로 목격한 야경을 바라보다 아이레가 크리스타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평온하고 기쁨으로 빛났지만 크리스타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레, 무섭진 않아?”

묻자 아이레는 잠시 크리스타를 들여다보고, 지나 온 길에 눈길을 두었다.

시선이 향한 저기쯤에는 6년 전, ‘무섭다’는 말로도 이루 형언할 수 없을 공포가 있었다. 거기서 눈을 돌려 아이레는 다시 크리스타를 응시했다.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대답은 마음속에 직접 들렸다. 크리스타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아이레가 다시 반짝이는 야경을 내다보았다.

「내가 평생 보살펴야 하는 세계야. 그날의 공포를 계속 외면하고 있을 순 없어.」

다시 마음속에 들린 말에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결의가 속 시원히 털어놓지 않고서 숨기고 있는 무언가의 정체를 크리스타는 읽을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이 아이레를 오늘 여기에 세웠다는 사실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그게……오늘 여기에 오자고 한 이유야?」
「실은 이유가 하나 더 있어.」

아이레는 다시 마주 섰다. 품에서 무언가 목걸이 같은 것을 꺼내더니 크리스타의 목에 걸어 주었다. 크리스타는 펜던트를 손바닥에 받쳐 내려다보았다. 투명한, 안경알 절반 정도 크기의 도톰한 보석 펜던트가 하얀 빛을 은은하게 발하고 있었다.

오늘에야 처음으로 실물로 접한 이 보석의 재료를 크리스타가 눈치채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 이거……?!」

너무나 놀라 크리스타는 아이레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보는 눈이 많아서 생일에 맞추진 못했어.」
“그게 문제가 아니……!”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외치고 아차 싶어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정도 크기면 대체 깃털을 어느 세월에 얼마나……!」
「걱정 마. 그런 것쯤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왜 생일 선물로 이렇게까지…….」

익루석(翼淚石). ‘날개의 눈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투명한 보석의 재료는 크샤앤나의 깃털이었다. 깃털을 가는 시기, 즉 생일 즈음에 성인 크샤앤나 한 명의 날개에서 나온 깃털을 가공해 제조할 수 있는 익루석도 이 정도 크기를 기준으로 환산하자면 두 개쯤이던가.

그런 귀하디귀한 보물이 지금 크리스타의 손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보석이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레에게서 비롯되었고 자신에게 닿기 전 다른 어느 누구의 손길도 거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나라면 열한 살 때부터도 날개 한 짝 분량으로 제단의 결계에 필요한 양만큼은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 즈음부터 생일마다 다섯 장씩 몰래 모아서 보관하는 게 일이었지만, 그 밖의 일은 크리스타가 염려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아이레의 눈빛이 한층 진지해졌다.

「이걸 크리스타에게 꼭 주고픈 이유가 있어.」

뭔데? 전하지 않은 마음속 물음에 답하듯, 혹은 답할 수 없다는 듯 아이레는 고개를 젓고 말을 이었다.

「지금은……그 이유를 다 말할 수 없어. 하지만, 이것만은 지금 말할게.」

그러더니 아이레는 다시 크리스타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열 살 무렵에는 키도 비슷하고, 아니, 크리스타보다 새끼손가락만큼 작고 손의 크기도 비슷했던 아이레는, 여전히 선이 곱고 가냘프지만 이제는 손가락도 길고 어깨도 넓고 키는 크리스타보다 한 뼘은 큰 소년으로 자라 있었다.

「앞으로 언젠가, 너에게 이 보석의 힘이 필요할지도 몰라……나 때문에.」

아이레 때문에? 아이레는 의미 모를 말을 어딘가 슬프고 어딘지 괴로운 표정으로 전하고 있었다.

「네가 날 지켜 주는 만큼, 나도 널 지켜 주고 싶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야. 이 보석은……지니고 있으면 우리가 직선 거리로 이 별의 지름만큼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이 별 어디서든 네 생명이 위험할 때에 널 지켜 줄 거야.」
「아이레…….」

크리스타는 중얼거리고서 짐짓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난 널 두고 생명의 위기에 빠지지 않아! 그런 위기쯤 닥쳐 와도 거뜬히  이겨 낼 거야. 어쩌다 내가 멀리 떠나는 때가 있어도 그때마다 꼭 네 곁으로 돌아올 거라고! 그렇지만…….」

그러면서 자신의 손을 잡은 손을 살며시 힘주어 잡았다.

「이 별 어디에서도 아이레와 마음이 통한다면, 나도 보다 안심하고 널 지킬 수 있을 것 같네…….」

기쁨에 찬 두 쌍의 눈빛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소녀와 소년은 누가 먼저랄 것 겂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예정보다 한 해 빨리 붉은 빛을 만인에게 보이기 시작한 보름달 아래에서.

그리고 아직 낙원 주민들의 눈에는 희미한 안개 같기도 한 그 빛깔의 의미를 지금은 아이레만이 알고 있었다. 그 의미의 극히 일부만을.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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