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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날개자리의 흰날개성운 (외전)

작은 낙원을 지키던 소년과 소년을 지키던 소녀의 이야기
검은날개자리의 흰날개성운



외전 : 감사의 날



“오늘은 97쪽의 ‘소요라티예’에 대해 알아볼까요?”

대신전 별관의 너른 방에 일곱 살에서 아홉 살 가량의 아이들 28명이 젊은 여성 교사 한 명을 앞에 두고 앉아 눈을 빛내며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일주일 뒤면 소요라티예지요? 소요라티예는 무슨 날이지요?”
“케이크 배부르게 먹는 날이에요!”

스물여덟 명 중에서도 유난히 장난이 잦은 아이가 대뜸 외쳤다. 교실 곳곳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선생님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죠. 그럼 그 케이크를 먹는 이유는 뭘까요?”

선생님이 상냥한 어투로 진지하게 묻자 웃음소리는 다시 가라앉았다.

“낙원에서 처음으로 날개를 크게 펴서 하늘로 올라간 분에게 감사하기 위해서랬어요.”

말수 적고 매사에 진지한 아이가 답했다. 선생님이 미소를 지었다.

“맞았어요. 이제부터 선생님과 함께 소요라티예와 그분에 관해 자세히 알아 보기로 해요.”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선생님은 학생들을 한 번 둘러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먼 옛날에, 낙원은 낙원이 아니었어요. 바깥처럼 위험하고 풀 한 포기도 흔치 않아 사람이 살기 굉장히 힘들었죠.”

낙원의 아이들은 낙원이 낙원이 아니던 시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우리 별 크샨나 위의 다른 모든 곳에 비하면 안전하고 평지가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곳에 모여 살면서 사람들이 안심하고 풍족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어요. 하지만 그저 성벽을 쌓고, 바깥의 위험한 생물들에게서 사람들을 지킬 힘을 기르고 무기를 만들고, 가축을 치고, 농사를 짓기 위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원래의 환경을 크게 바꾸지도 못했고, 겨우 좋아진다 싶으면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희망을 잃고 지쳐 갔지요.”

아주 먼 옛날 조상들의 고난이 꿈속 일이라도 되는 듯 맑은 햇살이 교실 안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지도자 중 한 분이 아무도 내리지 못한 결단을 내렸어요. 모두를 고통에서 구하고 영원무궁한 지상낙원을 이루기 위해서요. 그분은 소요라라 불렸고, 당시 크샨나에서 가장 능력이 뛰어난 크샤앤나였지요. 여러분, 크샤앤나들은 어떤 힘이 있지요?”
“자연과 대화하는 힘이요!”
“자연의 힘을 빌릴 수 있어요.”

아이들 몇몇이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잘 알고 있네요. 그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볼까요? 크샤앤나는 하얀 날개에 자연과 소통하는 힘을 지니고 태어나요. 그래서 자연에 여러 부탁을 할 수 있지요. 비를 내려 달라, 그치게 해 달라, 저기 바깥의 장미들이 한겨울에도 활짝 피어 있게 해 달라…….”
“선생님, 장미꽃은 겨울에도 피지 않나요?”

크리스타가 의아해져서 물었다. 선생님은 빙그레 웃었다.

“맞아요. 우리 낙원은 사계절이 있지만 일년 내내 기후가 비슷하죠? 여름엔 온도가 살짝 높고, 겨울엔 조금 서늘하고. 그러니 겨울에도 지금만큼 많이는 아니지만 장미꽃을 볼 수 있죠. 하지만 아직 낙원이 아니던 낙원에서 여름은 녹을 듯이 뜨겁고 겨울은 얼어붙을 듯이 추웠어요. 겨울이 한창이면 장미는 꽃을 피우기는커녕 잎도 달고 설 수 없었죠. 하지만 크샤앤나 한 명이 자연에게 부탁하면 장미 두어 송이 정도는 겨울에도 예쁘게 며칠씩 필 수 있었고, 수백 명이 온 힘을 다해 부탁하면 마을이 떠내려갈 듯이 내리던 비도 그치게 할 수 있었다고 해요.”
“빗물에 마을이 떠내려간다고요?”
“낙원에선 그런 일을 보지 못했죠? 비가 한 장소에 한꺼번에 너무 많이 쏟아지면 그곳에 물이 고여 땅 위의 것들이 물에 잠길 수 있어요. 낙원이 있기 전의 사람들은 그걸 ‘홍수’라고 불렀어요. 먼 옛날 소요라 님이 이 낙원을 실현하기로 마음먹은 시대에는 지금의 필란테에도 1년에 몇 번은 큰 홍수가 났지요.”

다른 아이의 질문에 답해 주고서 선생님은 본론으로 돌아갔다.

“소요라 님은 모든 인간의 기술과 문명을 동원하고 모든 크샤앤나의 능력을 모아도 이 땅을 오래도록 살기 좋게 만들 수 없다는 걸 깨달으셨어요. 예를 들어 이 신전에서부터 숲, 별의 언덕까지만큼의 땅이 지금과 같은 상태를 10년 유지하게 만들려면 크샤앤나 수만 명이 10년 동안 다른 아무 일도 못 하고 온 정신을 집중해 신중하게 자연에 부탁만 해야 해요. 하지만 소요라 님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그처럼 많은 사람에게 지속적인 희생을 강요해서 낙원을 만드는 일을 바라지 않으셨어요.”

선생님은 말을 잠시 끊었다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소요라 님은 크샤앤나 한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낙원을 위해 쓰기로 하셨어요. 작은 날개를 커다랗게 펼쳐 날개의 힘을 무한대로 확장해서 저 하늘로 날아올라 하늘과 지상의 뜻을 변화시키기로 한 거지요. 소요라 님은 영원무궁한 지상낙원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과 그 낙원의 오래도록 이어지는 생명력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라면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 교실 너비만큼 날개를 크게 펴서 하늘로 날아오르셨어요.”

이때 선생님은 날개를 펴는 새처럼 양 팔을 벌려 하늘로 날아오르듯 팔을 올렸다. 곳곳에서 아이들의 작은 탄성이 울렸다.

“소요라 님께서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 올라가고 나서, 낙원이기 이전의 땅은 순식간에 풍요롭고 안전해져 갔어요. 그간 잘 자라지 못하던 풀과 나무가 곳곳에 쑥쑥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곳곳에 맑은 물이 흐르고, 틈만 나면 사람과 가축을 노리던 맹수들도 발길을 끊었고, 홍수도 사라지고, 일 년 내내 온화한 기후에……지금 여러분과 선생님이 누리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이 그때에 실현되어 처음으로 몇 년씩 지속되었어요. 이것이 바로 낙원을 탄생시킨 낙원 최초의 승천이에요. 소요라 님이 승천하신 해를 우리 조상들은 낙원력의 원년으로 삼고, 수년 후에는 소요라 님이 승천하신 날을 소요라티예[소요라의 날]로 정해, 우리 모두는 매년 이맘쯤에 소요라 님의 숭고한 헌신에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답니다.”
“선생님, 그럼 아이레 님도 어른이 되면 승천하나요?”

평소 신전의 가르침에 큰 관심이 없는 아이가 대뜸 물었다. 크리스타는 반사적으로 그 아이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이레가 어른이 되면 하늘로 가서 다시는 땅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누가 그랬다는 거야, 멍청아.

“아이레 님은 승천하지 않으셔요.”

선생님은 살짝 당황한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답했다.

“아이레 님은 크샤앤나 중에서 유일하게 승천하지 않고도 낙원을 낙원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분이에요. 이라의 힘과 사명을 타고나셨으니까요. 이라의 힘은 소요라 님의 첫 승천과 함께 이 땅에 탄생했어요……자, 자, 오늘 복습 과제는 지금 설명하는 부분까지에요.”

교실이 어수선해지자 선생님은 과제 범위부터 환기시켜 아이들을 조용하게 만든 다음에 이야기를 재개했다.

“소요라 님에게는 아일라라는 누님이 있었어요. 아일라 님은 사랑하는 동생이 승천을 결심한 것을 슬퍼했지만, 낙원을 위하는 동생의 마음을 가족으로서, 같은 지도자로서 존중하고 지지하셨지요. 그래서 소요라 님은 안심하고 하늘에 오르셨고, 자신이 사랑한 인간의 터전이 낙원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높이서는 세세한 것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겠죠? 하지만 소요라 님은 풍요로워져 가는 낙원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지요. 왜냐하면 높은 하늘로 가신 소요라 님과 땅에 계신 아일라 님은 여전히 마음이 이어져 있었으니까요. 아일라 님은 동생의 승천 후 낙원이 어떻게 실현되어 가는지를 매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껴 마음에 꼭꼭 담았고, 그렇게 마음속에 담긴 낙원과 아일라 님의 기쁨을 소요라 님은 저 하늘 위에서 빠짐없이 함께 느꼈답니다.”

마음이 이어져 있었다는 대목이 크리스타는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아일라 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소요라 님과 마음이 이어져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낙원의 지도자들에게 당부하셨어요. 사랑하는 동생이 저 높은 하늘에서 이르길, 승천한 크샤앤나의 힘은 애석하게도 영원하지 않고, 새로운 크샤앤나의 승천을 계속 필요로 한다고, 그리고 누군가 저 높은 하늘까지와도 공명할 수 있는 크샤앤나 한 명이 영원무궁한 낙원이 행복하게 지속되고 있음을 하늘 높은 곳에까지 평생 전해 주어 승천한 이들이 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도와야 한다고요……그 후로 낙원에서는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크샤앤나를 대대로 아일라 님의 후계로 임명했고, 이러한 크샤앤나들을 아일라 님의 성함을 따서 ‘이라’라 부르게 되었지요.”
“……선생님.”

크리스타는 한 손을 들었다.

“승천한 크샤앤나들과 아이레 님의 관계가 낙원에 중요한데, 왜 신전에는 아이레 님 말고는 크샤앤나가 하나도 없지요? 그러니까……왜 승천하는 크샤앤나들은 아이레 님과 가까이 지내지 않는 거죠?”

대신전에 크샤앤나가 아이레뿐인 것이 늘 의아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나만이 아이레와 마음이 이어져 있다’는 기쁨에 살짝 금이 간 듯한 껄끄러움이 삐딱한 질문을 던지도록 등을 떠밀었다. 사람더러 보고 들으라고 하늘을 통해 무언가를 전함은 마음의 공유나 마음으로 하는 대화보다는 자연과의 대화에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크리스타는 최초의 승천자와 최초의 이라의 관계에 괜히 감정이 상했다.

크리스타의 물음을 들은 선생님은 조금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이내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승천의 전통은 저 멀리 백은천로에 사는 크샤앤나들이 대를 이어 보존하고 있어요. 그들에 의하면 승천하는 크샤앤나와 이라가 사이가 깊어야만 승천의 효력이 원활하게 유지되는 건 아니고, 그렇게 자신들끼리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승천의 전통을 잇기에 가장 수월하다고 해요. 선생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백은천로 주민들은 승천에 대해 낙원에서 가장 잘 아는 이들이고, 이미 3천 년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크리스타는 더 깊이 묻지 않았다. 선생님의 대답을 듣고 여태 궁금했던 것 한 가지는 해소되었으나, 원하는 답은 얻을 수 없었고, 이 자리에서 어떤 질문을 던져도 얻어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크리스타, 이것 봐.”

일주일 뒤의 오후. 소요라 님께 감사를 바치는 오전의 일정이 끝나고, 새하얗고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곁에 두고 책을 뒤적이던 중에 크리스타는 바로 곁에서 마찬가지로 책을 읽던 아이레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우주의 나그네 요정들이 그랬다는데, 저기 멀리 우리 같은 생명이 사는 다른 별엔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이 있대.”
“부모님께?”

크리스타는 고개를 내밀어 아이레가 읽던 책을 들여다보았다.

“스승님께 감사하는 날도 있어.”
“그러네.”

부모에게 감사하는 날, 스승에게 감사하는 날, 모두 크리스타에게 친숙한 듯 생소했다. 낙원의 모두가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갖도록 정해진 날은 1년 중 바로 오늘, 소요라티예 하루뿐이었다.

“왜 우린 감사하는 날이 오늘밖에 없을까? 부모님이나 스승님에게 감사하는 날도 만들면 맛있는 케이크를 먹을 날도 늘어날 텐데.”
“글쎄…….”

아이레가 생각에 잠긴 동안 크리스타는 제 몫의 ‘깃털솜 케이크’를 또 한 입 분량 입에 넣고 사르르 녹는 향긋한 달콤함을 맛보았다. 그것을 삼킨 때 아이레가 입을 열었다.

“낙원은 언제나 모두가 서로에게 감사하며 지내서 그럴까?”

낙원의 아이들은 언제나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며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배웠다. 대신전에 속한 아이들은 물론이고 낙원 전 지역에 사는 아이들 모두가 그러했다.

감사와 존중은 낙원 모두가 아는 덕목이었다.

그래도 그 덕목을 이렇게 해서 아이레에게 듣는 일은 느낌이 새로웠다. 크리스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레를 쳐다보다 문득 떠올리지 않아도 좋을 생각을 떠올렸다.

“그런가……근데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이 있어도 대신전은 지금이랑 똑같겠지? 우린 부모님이 없으니까.”
“……그럴지도.”

이라와 이타라는 물론이고 신관 전원과 중요한 직책의 무인 등 대신전의 사람들 상당수는 친부모를 모르고 대신전에서 자라난다. 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대신전의 심사와 점성술의 결과에 따라 대신전 사람으로 선택되어, 생후 1년이 지나면 대신전에 들여졌다. 대신전 관할 시설 중에는 이런 아이들을 양육하는 보육원도 있었다.

크리스타는 자신의 곁에 부모님이 없음을 이상하다거나 허전하게 느낀 적이 없고, 대신전에서 함께 생활하는 다른 아이들도 그런 듯했다.

낙원에서 생명이란 혼이 크샨나의 뜻에 의해,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남녀에게서 만들어진 육신에 깃들어 이 세상에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낙원에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낙원의 아이요 크샨나의 아이였고, 친부모가 있건 없건 아이들은 누구나 풍족한 사랑 안에서 자랐다.

하지만 대신전 바깥에는 자신들의 삶과 다른,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의 삶이 수없이 존재함도 크리스타는 알았다.

“그치만 크리스타……그런 날이 낙원에도 있다면, 난 나를 태어나게 한 분께 한 가지 꼭 감사드리고 싶어.”
“뭔데?”

아이레는 미소 띤 얼굴로 크리스타를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크리스타와 마음이 이어져 있는 생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 말을 들은 크리스타의 가슴은 뛰었다. 지난 주에 마음속에 자리한 서운함 비슷한 박탈감은 아무 상관 없게 되었다.

“나도. 내 부모님한테 아이레랑 함께 살 수 있게 낙원에 태어나게 해 주신 걸 감사할래.”

크리스타는 활짝 웃으며 아이레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홉 살에 맞이한 소요라티예의 오후는 깃털솜 케이크보다도 달고 향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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