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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세팅기가 고장난 아침

2018.05.24. 네이버 블로그씨 질문

후다닥 감은 머리의 물기를 타월로 닦아내며 거울 앞에 섰다. 매일 아침 당연하게 쓰던 세팅기를 끌어다 놓고 스위치를 켰다. 어?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시 한 번. 역시나. 이럴 리가. 마력 콘센트는 틀림없이 꽂혀 있는데. 젖은 채 아무렇게나 구겨지고 꼬부라진 머리카락만큼이나 A의 마음은 안절부절한다. 구제불능 곱슬머리를 아침마다 완벽하게 책임져 주던 마법 세팅기가 고장난 모양이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A는 그간 수납장에 고이 모셔 둔 헤어드라이어와 롤빗을 찾아 꺼낸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헤어드라이어를 썼던 게 벌써 2년 전 일 아닌가? 헤어드라이어와 롤빗을 들고 다시 거울 앞에 섰어도 새로운 심란함이 눈앞을 가린다.

불현듯 예상 밖의 놀라움이 심란함을 걷어냈다. 거울 속 젖은 곱슬머리가 순식간에 화사한 빛에 둘러싸였다.

"……대강 비슷하게 해 봤어."

빛이 사라지자 머리 모양은 요즘 즐겨 하는 발랄한 헤어스타일로 탈바꿈했고, 바로 뒤에서 룸메이트 G의 한 마디가 들렸다. 얼떨떨해진 A를 거울 앞에 두고 G는 돌아서서 욕실로 향했다.

"……고, 고마워."

A는 뒤로 돌아 G가 닫고 있는 욕실 문에 대고 황급히 전했다. 문은 닫혔고 A는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근처의 유서 깊은 마법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G는 이 방을 한 달째 A와 함께 쓰고 있으며, A가 G와 알고 지낸 것도 그때부터였다. 말수 적고 분위기 냉랭한 룸메이트는, 마과학 기술의 보편화 속에서 한층 심도 높은 차별화를 꾀한다느니 하는 이유로 교육 과정을 빡세게 운영하기로 유명한 아카데미 탓인지 말 한 마디 나눌 틈도 얼굴 볼 틈도 드물었고, 그런 그녀에게 A가 느끼는 서먹함과 거리감은 한 방 생활 한 달째가 되어도 여전했다. 자신이 요즘 즐겨 하는 헤어스타일을 G가 기억하고 있는 것도 A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마과학 기술이 보편화되어도 마법사란 굉장하구나. 오늘, 아니면 조만간 꼭, 학교 근처의 단골 제과점에 들러서 마과학도 마법으로도 흉내내지 못할 환상적인 맛의 단골 메뉴를 룸메이트 몫으로 사다 주어야겠다. 바쁜 아침에 순식간에 발랄하게 연출된 머리 모양을 들여다보며 A는 생각했다.





2018.05.24. 네이버 블로그씨 질문:
씻고 나왔는데 드라이기가 고장 나 있다면 난감하죠. 기계가 고장 나서 불편했던 적 있다면 얘기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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