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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날개자리의 흰날개성운 6

작은 낙원을 지탱하던 소년과 소년을 지키던 소녀의 이야기
검은날개자리의 흰날개성운



6. 날개와 외날개



백은천로의 이착륙장으로 내려오자마자 마을의 가장 큰 병원에서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받고, 아이레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안정을 취하라는 의료진의 권유에 따라 전망 좋은 병실의 침상으로 옮겨졌다.

창백한 빛깔의 목재로 바닥이 깔린 병실은 삭막하지는 않으나 수수하도록 검소하고, 어깨까지 받치는 큰 베개도, 특유의 요철 구조로 이루어진 침대도, 아이레가 매일 몸을 뉘인 대신전의 그것과 구조는 같으나 일체의 장식적인 부분이 없이 오로지 ‘크샤앤나가 반듯이 누운 자세로 수면을 취하기에 적합한 가구’라는 기능에만 충실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병실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은 의외로 마음 편했다. 침상은 대신전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자신의 침실에 고이 마련되어 정성스레 관리되는 고급스러운 침대보다도 심신을 편안히 해 주는 듯했다.

……혹시, 누구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이 간소한 병실이 자신을 ‘나는 낙원을 생명으로 지탱하기 위하여 대신전에 몸담은 자’라는 자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그런 듯도 싶고, 아닌 듯도 싶다.

침상의 각도를 조절해 상반신을 세운 상태로 아이레는 노을 진 바깥을 내다보았다. 갖가지 고산식물이 보기 좋게 심긴 고산정원과 저 너머 산봉우리들이 주홍빛 노을에 잠겨 있었다.

불타듯 붉은빛을 더해 가는 노을은 이내 아이레의 머릿속에 핏빛 영상의 단편을 어렴풋이 재생시켰다.

‘불과 수 주 전’.

되살아난 기억을 짚어 보니, 날갯죽지가 오그라들 듯이 끔찍한 핏빛 살육의 광경에 섞여 있던 무언의 메시지는 분명히 그러했다.

불과 수 주 전의……’미봉책’?

‘낙원의 작고 평범한 생명’들을 ‘하늘에 오르는 자의 대열’에 들여 갑작스레 찢긴 낙원을 봉합하는 ‘미봉책’?

설마. 그럴 리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연상 작용의 결과물에 아이레는 경악했다.

그럴 리가 없다. 이것은 혹시, 접근이 허락되지도 않은 정체불명의 의식을 엿보고서 받은 충격이 멋대로 지어낸 망상 아닐까?

그러나 망상일 가능성을 생각한다고 마음이 안정되지는 않았다. 다시 떨릴 것만 같아지는 두 손으로 아이레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이레 님?”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려온 니콜의 목소리가 아이레의 의식을 무서운 불안감에서 현실의 병실로 되돌려 놓았다.

“들어오세요.”

대답하자 니콜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을 닫은 니콜은 곧 아이레 곁으로 다가와 공손히 물었다.

“몸은 어떠신지요?”
“괜찮습니다. 바깥 경치도 아름다워 내다보는 사이에 피로도 가셨어요……아무 이상 없을 겁니다.”

아이레는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그 미소에 답하듯 니콜도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 병원 사람들의 말을 듣고 왔습니다만, 몸에 이상이 있으실 확률은 극히 낮다고 하였습니다. 구체적인 상태는 검사 결과가 나와야 확인할 수 있지만, 아마 최근에 연달아 일어난 큰 사건들에 스트레스를 받으셔서 뇌와 신체가 일시적인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으리라고, 의료진은 추측하고 있다 하였어요.”

최근에 연달아 일어난 큰 사건들.

달의 붉은빛은 갑자기 짙어졌고, 그 붉은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혼란과 고통을 호소하였으며, 외부 생물의 급습과 공격의 와중에 크리스타는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실종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아이레 님.”

가만히 부르는 니콜의 목소리를 듣고 아이레는 다시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숙여 두 주먹만 내려다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지금 많이 힘들고 근심이 깊으실 줄을 압니다. 이 낙원 전체를 지탱하시는 고귀하신 생명으로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자기 자신을 항시 최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는, 날개 없는 저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주제넘게 말씀드리건대, 부디 아이레 님께서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편히 가지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을 편히 먹고 이 낙원을 지탱한다.

크리스타도 없는 채 혼자서, ‘작고 평범한 생명’을 포함한 누군가의 피로 ‘미봉책’을 자행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낙원’을 계속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두려운 의문은 낙원의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다.

“이타라는 무사히 낙원에 돌아올 겁니다. 이타라와 마음이 이어지신 이라께서 이타라의 생존과 무사 귀환을 굳게 믿으신다면, 이타라에게도, 낙원에도, 그리고 아이레 님께도, 희망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그러니, 부디 평온한 마음으로…….”



「――아이레!!」



절박한 외침이 불시에 마음속에 뛰어들어 아이레의 의식을 확 잡아끌었다.

크리스타다.

크리스타, 너니? 정말로? 무사해?



“크……리스타?!”
“아이레 님?”

니콜이 옆에서 부르는 목소리도 꿈결 같게만 들렸다. 이 상황에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몸짓을 보여야 하는지의 일체의 판단이 마비되어 있음을 깨닫기까지도 몇 초는 걸렸다.

“아이레 님.”

정신이 퍼뜩 든 순간 니콜이 다시 한 번 아이레를 부르고 고개를 가까이 내밀었다. 염려 어린 눈길로 안색을 살피는 니콜 앞에서 아이레는 당혹과 긴장을 감추려 애썼다.

익루석을 만들어 크리스타에게 맡긴 일은 크리스타와 자신만의 비밀이다. 태연한 척하려 해도 표정이 어색하게 굳어지는 가운데, 이 한 가지만을 되풀이해 생각했다.

“조금 더 안정을 취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멋대로 발걸음해 심신에 무리를 끼친 점 사죄드립니다…….”
“아닙니다. 니콜은 이타라의 빈자리에 소임을 지니고 보내진 자, 저의 안위를 곁에서 살핌은 니콜이 자신의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한다는 증거지요.”

아이레는 황급히 대답했다.

“그리 생각하여 주시는 넓으신 아량, 감사하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니콜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처럼 예를 표하는 성기사 앞에서 아이레는 무어라 형언하기 애매한 죄책감을 느꼈다.

“……니콜의 말대로, 지금은 휴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검사 결과도 금세 나올 테니, 잠시나마 바깥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말씀에 따르겠으나, 멀리 떠나 있지는 않겠습니다.”
“그 마음, 감사합니다. 필요하실 때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니콜은 꾸벅 인사하고 방을 떠나갔다. 다시 아이레만이 홀로 남은 병실 안에는 한층 짙어져 절정에 이른 노을빛이 가득했다.

문득 조금 전 마음속에 들린 목소리가 가슴 아리게 떠올랐다. 마음속은 그 뒤로 줄곧 잠잠했다.

「……크리스타?」

희망 반, 두려움 반으로 아이레는 조심스레 불러 보았다. 마음에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크리스타는 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아 있다고 실감할 수도 없다. 이 안타까운 모호함에 지금 당장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겹쳐 보고 아이레는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모호하고, 불안정하다.

조금 있으면 달이 뜰 시간이다. 한 번도 하얀 적이 없었던 원래의 그 빛깔로 돌아온 잔인한 달은 크샨나 어딘가에서 숨쉬고 있을 크리스타의 머리 위도 비추어 줄 것인가.





—낙…의 작ㄱ… ㅓㅇ버만 생명……ㅗ서……—

어둠 속에 스며드는, 거칠고 잡음이 가득해 사람의 음성인지조차 의심스러운 소리.

마찬가지로 어둠에 스며드는, 거칠게 흐트러진 불분명한 영상. 무언가가 누군가의 손에 붙들려 경련한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와중에 크리스타는 그것밖에 알 수가 없었다.

—……하느…레 하…한……ㅏ에게 축복을……—

조금 더 사람의 목소리에 가까워진 그 소리는 누구에게인지 ‘축복’을 내리고 있었다. ‘무언가’가 다시 한 번 크게 떨었다. 그것이 어느 생명체에게서 강제로 떼어진 날개임을 깨닫자 욕지기가 일었다.

축복이라니. 이런 잔인하고 혐오스런 행태의 어디에 축복이? 뒤집히려는 속을 진정시키며, 그렇게 따져 묻듯이 크리스타는 눈앞의 광경을 노려보았다.

[……네 이놈.]

불현듯, 눈 깜짝할 사이에 영상이 어둠에 묻히고,‘축복’을 내리던 소리는 어디선가 들은 듯한, 그러나 누구의 것인지는 모를 목소리로 돌변했다. 그 목소리에 담긴 준엄함의 퍼런 서슬이 자신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음을 눈치채고 크리스타는 움찔했다.

[네가 무어라고 낙원을 부정하느냐!]

목소리는 온갖 남녀노소의 음성이 뒤섞인 외침으로 변해 매섭게 호통을 쳤다. 호통에 호응하듯 성난 웅성거림이 들끓는 가운데 피투성이의 손들이 어둠을 뚫고 몰려왔다.

[낙원을 부정해 낙원의 앞길을 왜곡한 자, 그 목숨도 넋도 낙원에서 영원히 추방당할 것이다!]
‘무슨 소리야!? 저리 가!’

육박한 손아귀들을 뿌리치던 크리스타는 이내 수십 손아귀에 붙들렸다. 몸부림쳐도 손아귀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거 놔……!!’

붙잡는 힘은 도리어 강해졌다. 전신이 욱신거린다. 웅성거림 또한 한층 사납게 고막을 울렸다.

[영원히 추방당할 것이다!!]
—크리스타――!!!—

살의에 찬 외침의 틈으로 목소리 하나가 다급히 들려왔다. 낙원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

—크리스ㅌ———

다시 한 번 반복된 그 목소리는 살기등등한 괴성들에 무력하게 파묻혔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낙원의 전부인 그 목소리를 향해 크리스타는 팔을 뻗었다. 붙들린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이레——!!”

절박하게,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소리친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천장’이라고 생각되는 생소한 무언가가 저 위에서 시야를 온통 메우고 있었다. 그 하나를 인식하기까지도 턱까지 차오른 호흡과 거칠게 뛰는 고동이 가라앉을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가 어디지?

겨우 진정이 되고서 떠올린 의문에 놀라 상체를 일으키려던 순간, 무거운 통증에 몸이 굳었다. 도로 뒤로 쓰러지면서, 처절한 몸싸움을 벌였던 듯한 기억이 어렴풋이 살아났다.

아니다. 몸싸움은 실제가 아니라, 정신이 들기 전에 겪은 환영 속에서의 일이었다. 그런데 환영의 내용이 그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떠올려 보려다 이유 모를 공포감에 온몸이 오싹해져 크리스타는 몸서리를 치며 단념했다.

떨리던 마음이 조금 안정되고 나니, 이 장소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새삼 일었다. 이번에는 아주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면서 크리스타는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일단 자신이 바위와 포식생물뿐인 그 황야의 한 바위 위가 아니라 어느 집 어느 방 안의 침대에 누워 있음은 분명했다. 안락하다고는 평하기 어려운 침대 옆에는 얇은 커튼으로 가려진 유리창이 하나 나 있어 한낮의 햇빛이 그것을 통해 커튼에 걸러져 방에 스미고 있었다.

크리스타는 커튼을 슬쩍 걷어 보았다. 유리창 바깥에는 조경수인 듯한 나무 몇 그루와 낮은 담벼락이 보였고, 그 뒷편에는 수풀이 펼쳐져 있었으며, 수풀 너머로는 가옥의 지붕으로 추측되는 낯선 구조물들이 몇몇 보였다.

필시 사람이 사는 곳, 아니면 사람의 발길이 지속적으로 닿는 곳이리라. 그렇다고 여기가 낙원이라는 법은 없었다. 오히려, 저 멀리 보이는 지붕도 그렇고, 이 방도, 낙원의 주거 공간과 사뭇 다른 생소한 분위기를 풍겼다. 천장의 구조도, 가구의 생김새도 문양도.

기억이 맞다면 낙원 안 어느 한 군데에도 이와 비슷한 주거 양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혹시 이곳은 백은천로?

하지만 설령 자신이 운 좋게 낙원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낙원 안으로 실려 왔다 해도 그들이 그 높디높고 외진 크샤앤나의 마을에 자신을 데려다 놓을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거기까지 생각한 때, 크리스타는 퍼뜩했다. 곧장 가슴에 손을 얹어 보았다. 아무런 단단한 감촉도 잡히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해 벌떡 일어나 몸을 돌린 순간, 침대 근처의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작고 소박한 목재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접힌 옷가지가 놓였고, 방금 전 찾으려 했던 펜던트는 옷가지 위에 고이 얹혀 있었다.

크리스타는 재빨리 침대를 빠져나와 익루석을 집어들었다. 금 하나 가지 않은 익루석이 노을 속에서 투명한 빛을 발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익루석의 줄을 목에 건 때, 방문이 열렸다. 체구가 작고 나이는 많아야 열한 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며 낙원에서는 본 적이 없는 특이한 옷차림을 한 소녀가 문 사이로 상체를 내밀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방으로 쑥 들어와 크리스타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여기가 어디죠?”

수 초의 어색한 침묵 끝에 크리스타가 물었다. 소녀는 대답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크리스타를 노려보았다.

“거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아요!”
“에?”

다짜고짜 던져진 말은 일방적인 명령조인 데다, 언어는 낙원의 언어임이 분명한데 억양도 말씨도 묘하게 생소하다.

“이 문을 넘어오면, 죽어요. 창문을 넘어도 죽어요.”
“뭐, …….”

상대에게 상황을 이해시킬 생각이 도통 없어 보이는 불친절한 경고에 크리스타는 어이를 잃고 덩달아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소녀는 크리스타를 계속 노려보다 이내 눈매를 누그러뜨렸지만,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사람들, 불러 올게요. 거기 그대로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서 소녀는 뒤로 홱 돌아 문 너머로 사라져 갔다. 소녀의 뒷모습을 처음으로 본 크리스타의 두 눈은 놓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녀의 등에 붙은, 크샤앤나들의 날개보다 훨씬 작고 볼품없는 연한 잿빛의 외날개를.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연회색 외날개의 생소함과 의아함에 정신이 쏠려 크리스타는 그 자리에서 발 한 발짝 뗄 생각조차 못 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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