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검은날개자리의 흰날개성운 7

작은 낙원을 지탱하던 소년과 소년을 지키던 소녀의 이야기
검은날개자리의 흰날개성운



7. 외날개와 날개 없는 자



의식을 되찾아 머물게 된 그곳의 모두가 그 소녀처럼 등에 잿빛의 작은 외날개를 달고 있음을 크리스타가 깨닫기까지는 나흘 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달리 말하자면, 사흘 동안은 그 방에서 사실상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고, 나흘째에야 외부를 살필 기회가 주어졌다.

방을 떠났다 돌아온 소녀와 동행한 중년 초입의 어른은 크리스타를 진찰하고서,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위험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채 체력의 소실을 겪었으니 한동안은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크리스타를 사흘 간 방에만 머물게 했다.

해가 세 번 지고 뜨는 동안의 시간은 침대와 탁자, 방에 딸린 화장실만을 오가는 극히 단조롭고 지루한 시간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영문 모를 수수께끼로 가득했다.

크리스타의 상태를 살피러 방에 드나드는 의료진이나, 방을 청소하고 음식과 갈아입을 옷가지를 날라 오는 일꾼들이나 하나같이, 각자의 역할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을 건넬 뿐,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이방인임이 명백한 크리스타에게 일체의 흥미나 호기심을 표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것을 내보이며 대답을 요구한다 해도 달가울 것은 없겠으며 오히려 이 편이 당연하다고도 생각되나, 이와는 별개로 다들 의식적으로 대화를 회피하고 있다는 인상을 크리스타는 받았다.

누구 하나 크리스타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알려 하지도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더더욱 의아하게도 여기가 어디고 어떤 곳인지 크리스타에게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저……여긴 어떤 곳이죠?”
“그것은 날개 없는 자에게 밝힐 일이 아닙니다.”

의사도 간호사도 간병인도 누구도 대답은 같았다. 그리고 방을 나서는 그들의 뒷모습은 반드시, 깨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그 소녀와 마찬가지로 잿빛의 작은 외날개를 내보였다.

‘날개 없는 자’.

낙원에서도 드물지 않게 입에 담고 귀로 듣는 그 호칭은 자신과 대신관 사람들, 그리고 낙원 인구의 9할에 이르는 이들이 ‘하얀 날개의 전령’ 크샤앤나들에게 예를 갖추는 상황에 스스로를 지칭하는 용어다.

이 방에서 벌써 다섯 번도 넘게 잿빛 외날개의 지성체들에게 들은 ‘날개 없는 자’라는 표현은 석연치 않은 껄끄러움을 매번 귓가에 남겼다.

경멸. 배제. 단어로 바꾸어 표현하자면 그렇게 형언될 법한 성질의 껄끄러움이었다.

아무 사건 없이 지루하지만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은 방 안에서 세 번째 아침놀을 맞이한 날의 늦은 오전, 의사는 이제 바깥으로 나가도 좋다고 크리스타에게 말했다. 그러나 이 지역 바깥은 인간의 생존이 불가능에 가깝고 몸도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 별도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마을 사원의 구호시설에서 며칠 더 휴식을 취하며 심신에 무리가 가는 활동을 피하라는 지시도 함께 받았다.

달갑지도 않은 ‘날개 없는 자’ 따위를 무슨 이유로 대가도 없이 며칠씩이나 돌보아 주는지 아리송하기는 하나, 곤경에 처한 이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성심껏 돕도록 주민들을 격려하는 낙원의 가르침과 비슷한 가르침을 이 동네도 따르는 모양이라고, 일단은 그리 생각하고 싶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이상 파고들어 따질 의욕은 나지 않았다.

소지품을 챙겨, 크리스타는 첫날에 대면한 그 소녀를 따라 사원의 구호 시설로 향했다. 병원에서 도보로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구호 시설은 병원과 마찬가지로 수풀을 끼고서 마을과 떨어져 있어 한산했다.

사원의 사제가 되기 위하여 수행 중인 ‘하이양’이라고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로 소속과 이름을 소개한 소녀는 점심식사 후 바깥 구경을 시켜 주겠다며 크리스타의 의향을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좀이 쑤셨던지라 꺼릴 것도 없이 동의하자 하이양은 첫날의 그때처럼 심각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내 뒤만 잘 따라다녀요. 혼자 아무 데에나 가서 마음대로 행동하지 말고.”

크리스타는 별 의문이나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하이양을 따라나섰다. 깨어난 지 나흘 만에 처음으로 나서는 바깥 구경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사람 사는 동네의 환경이며 풍경은 낙원과 사뭇 달랐다.

백은천로가 위치한 변방 산악지대 외의 땅 대부분이 평지와 평탄한 언덕인 낙원과는 대조적으로 비탈투성이에 절벽도 심심찮게 눈에 띄는 이곳은 좁게 난 길 곳곳에 계단, 혹은 드물게는 사다리가 닿아 길을 다른 길이나 장소와 이었다. 집도 2층 이상의 평수 좁은 주택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농지 또한 언덕에 계단 모양으로 층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언덕의 풀밭 위에는 가축으로 보이는 하얀 동물들이 모여 있는데, 그러고 보면 이 풀밭만큼 푸른 곳은 이 일대에 별로 없는 듯했다. 기껏해야 병원과 구호 시설 주변이 다일까. 그 외에는 온통 바위와 모래투성이다.

이 풍경은 백은천로와 비슷한가 싶어지지만, 얼마 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백은천로도 이보다는 덜 가파르고 널찍하며 푸르렀던 듯하다. 그리고 백은천로의 도로와 건물, 주거시설들은 이곳의 것들만큼 엉성하거나 노후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런 낯선 생활 환경의 척박함보다도 크리스타의 주의를 강하게 끈 것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었다.

구호 시설의 직원들부터 민가와 농지, 상점가의 남녀노소 주민들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등에 작디작고 초라한 회색 외날개를 달고서 자신들의 일상을 보냈다.

낙원에 사는 크샤앤나들의 날개는 비록 크샤앤나를 하늘로 띄울 만큼 크거나 강하지 못해도, 무심결에 향한 어느 눈길도 단숨에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웠고(아이레의 날개는 그 중에서도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귀한 미의 결정체라고, 대신전의 모두도 그 밖의 사람들도 듣기 민망할 정도로 칭송에 칭송을 거듭했다), 크샤앤나들은 그 미의 일익을 담당한 하얀 깃털들을 매 깃털갈이 시기마다 낙원 문명의 원동력인 깃털모래(주: 크샤앤나가 깃털갈이로 몸에서 보낸 묵은 깃털을 액체 상태로 가공해 증발시켜 얻는 모래알 정도 크기의 결정. 가공해 얻은 액체를 증발시키지 않고 여러 단계의 정제를 거친 뒤 응축한 것이 익루석. 익루석보다 제작 시기가 짧고 재료가 적게 들며 활용이 쉬우나 기능은 제한적이다. 대신전, 위원회 등 주요 조직의 전투인원들이 사용하는 고성능 특수 무기의 재료로 쓰이거나 정신 계열의 범용 회복술에 사용되며, 그 외에도 다방면에서 낙원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각종 기술들에 활용된다)의 원료로 신전에 기꺼이 기증함으로써, 역할을 다한 아름다움에 숭고한 유종의 미를 더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의 잿빛 외날개는 어찌나 작고 볼품없는지 장난으로라도 비행의 가능성을 상상하기 무색함은 두말할 것도 없고, 설령 그 깃털이 깃털모래의 원료로 쓰인다 해도 ‘깃털모래 제조에 필요하니 깃털 한 장만 달라’고 애원하기도 미안할 지경이었다.

사람의 발만 한 체격의 새들이나 달고 있을 법한 크기의 날개를, 그마저도 겨우 한 짝만 부여받은 육신을 이곳 주민들은 어쩌다 지니고 살아가게 되었나?

제법 널찍하고 경사도 완만하고 분주한 중앙 광장을 하이양의 뒤를 좇아 걸으면서 생각을 계속하던 크리스타는 다시 한 번, 자신에게로 향한 누군가의 미심쩍은 눈길과 마주쳤다.

눈길의 주인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바구니를 짜던 손동작을 재개했다.

아마도 구호 시설을 나서기 전에 착용하도록 요구받은 짧은 후드가 등을 가리고 있기에 누구도 길게 의문의 시선을 보내지 않는 모양이다.

“’날개 없는 자’가 여기에 머물고 있는 건 신전 바깥엔 비밀이에요.”

후드를 건네받은 때 하이양이 덧붙였다.

“혹시, 여긴 다들 하이양처럼 등에 날개가 있는 거야?”
“나가 보면 알아요.”

이 아이는 좀체 무언가를 혼쾌히 답해 주는 법이 없다. 크리스타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고 언니 마음대로 여길 떠날 생각은 말아요.”

중앙 광장을 빠져나와 인적도 뜸해진 때, 하이양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사흘 안에 사원장님이 언니를 찾을 거에요. 그전에 한 발짝이라도 여길 나가면 언닌 즉시 죽어요.”
“……너, 죽는다는 말 참 쉽게도 한다?”

얘가 첫날에도 방에서 나오면 죽는다는 소리를 하더니, ‘마을 바깥은 위험해요’도 아니고 ‘죽어요’라고? 크리스타는 핀잔을 날렸다.

“그게 사실인데요?”

하이양은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무덤덤히 대꾸했다. 크리스타는 어이를 잃고 발걸음을 딱 멈추었다. 하이양이 뒤를 돌아보았다.

“왜 사실이란 건데?”
“언니가 안다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크리스타는 기가 막혀서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소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다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떠나도 좋다는 말이 나올 때까진 안 떠나.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방법도 모르잖아.”

푸념하듯 말하고서 크리스타는 어서 가자는 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하이양도 걸음을 재개했다.

“맞다. 하이양, 왜 아무도 여기가 어디라고 물어도 답해 주지 않는 거지?”

나란히 걷던 중에 주위를 둘러보고 크리스타가 슬쩍 묻자, 하이양은 몇 걸음 뒤에야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디라는 정보보다, 앞으로 있을 대사제님의 전언이 언니에게 미래가 있기를 원하니까.”

귀에 들린 답변에서 크리스타는 석연찮은 의아함을 느꼈다. 말투가 갑자기 엄숙해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미래. 미래라니? 미래가 있기를 원한다는 건 또 뭐지?

“……그게 무슨 뜻이지?”

하이양은 대답하지 않고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짧은 회갈색 곱슬머리와 자그마한 잿빛 외날개가 눈에 들어온다.

“미래고 뭐고, ……이 마을 이름만이라도 알려 줄 순 없어?”

‘미래고 뭐고 진실을 알기 쉽게 밝힐 수 없느냐’고 물으려다 어떤 직감에 주춤해 크리스타는 질문의 범위를 축소했다. 하이양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뮤-아토.”

순간 멍해진 크리스타의 반응을 살피지 않고 하이양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뮤, 아토.

‘아토’란 이 별의 이름 ‘크샨나’와 마찬가지로 ‘낙원’을 뜻하는 고대언어의 단어로, 낙원의 기원년부터 통용되는 기년법 ‘아토력’의 명칭의 유래이기도 하다. 그리고 ‘뮤’라는 접두어는……뭐였더라?

고대언어에서나 쓰인 ‘뮤’의 의미가 가물가물한 가운데, ‘뮤아토’라는 이름이 크리스타의 머릿속을 휘젓는다. 기계적으로 하이양의 뒤를 따르며 크리스타는 속으로 물었다.

도대체 이곳은 뭐지?

사람이 사회를 이루어 생존할 수 있는 곳은 이 별에 낙원뿐이라고 어릴 적부터 거듭 배웠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곳은 분명히 낙원도 아니고, 낙원을 뜻하는 단어를 이름에 포함하고 있다.

혹시, 자신이 살던 낙원과 무언가 연관이 있다면, 그 연관성은 대체 뭐지?

“언니, ‘아이네’가 누군지 물어봐도 돼요?”
“……아이네?”

하이양의 느닷없는 물음이 크리스타의 생각을 흩었다.

“실은요……언니가 병원에 있는 동안 밤마다 잠꼬대를 했어요. ‘아이네’라고.”
“……아, 아이, …….”

‘아이레’라고 무심결에 정정하려던 입을 재빨리 다물었다.

병실에 있는 사흘 동안 밤마다 아이레의 꿈을 꾸었던 기억이 머릿속을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립고, 정답고, 기쁘고, 가슴 벅찬 꿈이었다.

그 꿈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정도를 넘어, 아이레의 마음에도 차마 털어놓을 수 없도록 달콤하고, 그 달콤함이 묻힐 만큼 쓰고 무거운 뒷맛을 남겼다.

“내, 소중한 사람…….”

지금 하이양이 뒤로 돌아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음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하며 크리스타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이런 사적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의무 따위 없으나 입술이 기어이 움직였다. 하이양이 슥 뒤를 돌아보았다. 크리스타는 속으로 움찔했다. 그런 크리스타를 한동안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하이양은 뜻 모를 표정을 지었다.

“’소중한 사람’!”

탄식하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걷는 모습에 크리스타는 어안이 벙벙해져 그 뒤를 좇았다.

“뭐, 뭐야? 내가 소중하다는데 네가 왜 불만이야?”
“누가 불만 있댔어요?”
“뭐 이래……? 저가 먼저 사적인 걸 물어봐 놓고…….”

크리스타는 투덜거리면서 하이양과 함께 구호 시설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태양은 슬슬 기울어 네 번째 석양을 하늘에 펼쳐 보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피오레이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15
검은날개자리의 흰날개성운 6